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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우체국·軍막사가 호텔로…도시에'스토리'입힌 싱가포르

2018-02-01

◆ 관광DNA 확 바꾸자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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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2010년 간척지 위에 지어진 뒤 '싱가포르의 상징'이 된 복합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에서는 매일 밤 '원더풀쇼'가 벌어진다. 레이저와 분수쇼를 동반한 이 쇼는 싱가포르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 [사진 제공 = 싱가포르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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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들렀던 바(bar)는 무역창고 건물을 재활용한 거고, 여기 정원과 저 호텔은 전부 매립지 위에 세운 거네요."

지난달 24일 찾은 싱가포르의 인공정원 '가든스바이더베이'. 각국 관광객이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의 발달 과정을 놓고 역사 지식 자랑에 한창이었다. 2010년 매립지 위에 지어져 싱가포르의 상징이 된 최고급 복합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에 이어 2012년 조성된 정원은 싱가포르의 복잡다기한 역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강 건너편으로 펼쳐진 초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인도 초고속 성장을 이룬 도시를 한눈에 보여주는 스토리라인이나 다름없었다.

말레이어나 중국어, 영어, 타밀어 같은 싱가포르 공용어를 포함한 전 세계 각국 언어로 제공되는 인쇄물과 오디오 가이드에는 싱가포르 주요 명소의 역사와 변천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였고, 관광객들은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무역창고로 사용됐던 클라키·보트키 등 강변 일대 바에서 음료를 마시고 수도원으로 사용됐던 차임스 레스토랑 단지에서 음식을 먹은 뒤 옛 식민지 우체국(풀러턴 호텔)이나 영국군 막사(카펠라 호텔)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도시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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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쇼핑몰이 밀집한 오차드로드에서 만난 한 호주 관광객은 "대형 쇼핑몰과 고층 빌딩 사이로 '페라나칸(중국과 말레이의 혼합 문화) 거리'가 있어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쇼핑하러 왔다가도 고유 문화를 알게 되고, 강변에선 옛 무역창고 건물에 들어가 술을 마시게 되니 싱가포르가 가진 이야기에 점점 익숙해진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잘 관리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타닉 가든'과 싱가포르 외곽의 야생동물원 등이 도심의 빌딩 숲과 대비돼 자연을 지키며 조화롭게 발달해온 도시를 잘 보여줬다고 입을 모았다.

비결은 싱가포르 관광청이 2016년부터 5년간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세운 '관광청 마케팅 전략 계획'이다. 관광청 마케팅 전략 계획의 제1전략은 '싱가포르 스토리텔링'이다.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스토리를 개발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회자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싱가포르 관광청 관계자는 "이제는 대규모 개발사업보다 도시 스토리와 관광객 개인의 체험에 집중할 때"라며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후에는 도시를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제공해야 하는데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에서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좁은 땅과 한정된 관광자원을 극복하고 도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기 위해 해외 콘텐츠를 과감하게 수입한 결과도 성공적이다. 2008년 유치한 F1 레이싱 '싱가포르 그랑프리'는 시내 한복판 일반도로에서 열리는 세계 유일의 야간 자동차 경주로 명물이 됐다. 2010년 들여온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싱가포르 관광산업이 꾸준히 성장해온 이유다. 서울(605.21㎢)과 비슷한 면적인 싱가포르(697㎢)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기준 1585만명. 같은 해 대한민국 전체를 찾은 해외 관광객(1334만명)을 훌쩍 웃돌았다. 관광 수익(2016년 기준)도 약 181억달러로 한국(약 170억달러)을 넘어섰다.

관광자원이 부족한 싱가포르가 이 같은 관광산업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수십 년간 장기 계획을 통해 랜드마크를 조성한 결과다. 싱가포르는 1960~1970년대에 공항과 휴양섬, 동물원, 컨벤션 시설 등 기초 인프라를 확충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랜드마크 조성 성과 중 하이라이트는 2010년 완공 후 싱가포르 상징이 된 마리나베이샌즈와 리조트 월드 센토사다. 김철원 경희대 컨벤션전시경영학과 교수는 "긴밀한 부처 간 협력과 민관협력을 통해 랜드마크를 확충하고 도시에 '스토리'를 입히는 것이 장기 관광 진흥 계획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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