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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에 8억원짜리 도로 만든 쌍용건설 이종현 소장

2014-07-07

바다를 매립해 만든 땅은 마르지 않은 밀가루 반죽처럼 물컹물컹하다. 이런 반죽 위에 도로를 만드는 일은 여간 깐깐한게 아니다.

쌍용건설(012650) (2,550원▼ 760 -22.96%)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에 걸쳐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매립지 위에 왕복 10차선 고속도로를 세웠다. 총 6㎞ 고속도로 중 쌍용건설이 맡은 부분은 해안가를 지나는 1㎞ 구간. 나머지 구간은 5개 시공사들이 나눠서 공사했다. 쌍용건설이 1000m 길이 고속도로를 만드는데 든 비용은 한화로 8200억원(미화 6억2700만달러), 1m당 공사비가 무려 8억2000만원에 달했다.

이종현 쌍용건설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고속도로 건설현장소장(부장)은 4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쌍용건설이 맡은 1㎞ 구간은 마리나 해안고속도로 공사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이었다며 “어렵고 불가능한 상황일수록 집중해서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냈다”고 소회를 전했다.
▲ 이종현 쌍용건설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현장소장/쌍용건설 제공
일단 연약한 매립층(15~30m)을 지나 50m 지하 단단한 암반을 뚫고 기둥을 설치해야 했다. 매립층 주변의 흐물흐물한 토사가 흘러내리거나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항만 공사에 사용되는 직경 1.4m 파이프파일 1300개를 도로 외곽 테두리를 따라 촘촘하게 박는 일이었다.

그러나 곧장 문제가 발생했다. 30~40년전 싱가포르 정부에서 바다를 매립할 때 미처 치우지 못하고 남겨놓은 방파제 덩어리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집채만한 돌덩이들이 지표면 수십미터 아래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연약 지반을 보강하려면 무조건 없애야했기에 방파제를 깨부수거나 뚫고 파이프파일을 박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 쌍용건설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지반 보강 작업 모습/쌍용건설 제공
방파제를 해결하고 나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6㎞에 걸친 대규모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시공사들이 인근 지역 파이프파일 제조공장에 한꺼번에 주문을 넣자, 공장들이 가격 담합에 나서는 바람에 갑자기 재료 비용이 비싸졌다. 게다가 주문 물량이 몰려 납기일도 늦어질 것이 뻔했다.

이종현 현장소장은 “2008년 싱가포르 현지에 오면서 하루에 담배를 3갑씩 피울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많이 했고 발상을 전환하기 위해 팀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쌍용건설은 파이프파일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싱가포르 정부를 설득해 고속도로 공사 현장 바로 옆에 파이프파일 임시 생산공장을 세우고 제조 기계를 들여왔다. 두께 2㎝ 강판을 말아 파이프파일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발주처 뿐만 아니라 다른 시공사들도 의심의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쌍용건설이 우수한 품질의 파이프파일을 생산해내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 쌍용건설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공사 모습/쌍용건설 제공
기존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파이프파일을 수입해 용접을 하던 것을, 현장에서 직접 생산해내자 원가를 낮출 수 있었고 공사 속도로 빨라졌다. 이종현 소장은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었지만 해냈다”며 “생산 제품의 품질을 우려한 발주처와 감사단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도 현장 직원들은 하나 하나씩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고 말했다.

다음 과제는 지반 개량 작업이었다. 기존에 있는 흐물흐물한 연약 지반에 시멘트 27만톤(t)을 주입해 단단한 지반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반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시멘트를 주입하는 방법이나 시멘트의 양도 달라졌다. 철저한 지반 조사에 기초해 지반 조건에 맞게 다양한 공법을 사용했다. 그렇게 시멘트가 연약 지반과 만나 굳으면서 두께 10m가량 단단한 땅을 만들어 냈다.

이종현 현장소장은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공사는 당초 바다를 매립한 연약 지반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일이라 연약 지반 보강 작업이 매우 오래 걸렸다”며 “불규칙한 지반에 균질한 품질의 지반 보강체를 형성하는 것은 신중한 공법 적용이 요구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 쌍용건설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공사시 수퍼빔을 설치한 모습/쌍용건설 제공

▲ 쌍용건설은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중 해안가에 있는 곡선 도로 1km 구간을 맡았다/쌍용건설 제공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연약지반에서는 도로를 따라 파이프파일을 땅에 박은 뒤 ‘ㅡ’ 모양으로 버팀보를 가설해 양쪽 벽체를 지지한다. 헌데 쌍용건설이 시공한 구간은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곡선 도로라서 균일하게 버팀보를 설치하는 것이 어려웠다.

쌍용건설은 싱가포르 토목공사 최초로 수퍼빔(Super Beam) 공법을 도입했다. 양쪽 벽체 중간에 수퍼빔을 설치하고 버팀보를 벽체의 양 옆으로 가설하는 기술이었다. 벽체가 곡선으로 휘어져있더라도 벽체의 압력이 버팀보에 수직으로 작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종현 소장은 “첨단 공법을 적용한 덕분에 시공 안정성도 확보하고 공기를 30일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현 소장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도로), 싱가포르(경마장), 인도 등 주로 동남아 국가에서 토목공사 입찰을 두루 담당했다. 지난 2008년부터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이번 마리나 해안고속도로 공사 후속 공사인 싱가포르 지하철 현장도 책임지고 있다. 쌍용건설이 만든 10차선 고속도로는 지난해 말 개통했다.

그는 이번 마리나 해안고속도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던 비결을 묻자 “고난도 지하 토목 분야에서 쌓아온 기술력이 강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쌍용건설은 서울지하철 공사 역사상 최고 난이도 구간으로 유명한 9호선 고속터미널역은 지상에 혼잡한 10차로 도로, 백화점, 호텔, 고속터미널 등 건물들과 지하에 노후된 지하상가를 위에 둔 상태에서 기존에 운행중인 지하철 3호선 바로 15㎝ 아래에서 공사를 수행했다.


▲ 쌍용건설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지반 보강 작업 모습/쌍용건설 제공
이러한 기술력 덕분에 쌍용건설은 하루 최대 1000명, 언어와 문화가 다른 10개국 근로자와 약 80대의 중장비가 24시간 2교대 로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 현장에서 무재해 1000만 인시(人時)를 달성했다. 쌍용건설은 싱가포르 최대 규모 건설 안전 시상식인 싱가포르 안전대상(LTA ASAC)을 5년 연속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ASAC 특별상까지 탔다.

발주처의 만족도도 높았다. 발주처인 싱가포르 교통청(LTA)은 이번 고속도로 공사를 맡았던 총 6개 시공사 중 쌍용건설의 공사 현장을 ‘최고(베스트)’로 꼽았다.

이종현 소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주처 공무원들이 개별 업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 여러 번 당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며 “쌍용건설이라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으니 향후 예정된 입찰에도 꼭 참여하라고 지속적인 요청 받고 있다”고 말했다.